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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혹은 비평

영화 26년 시사회를 다녀오다

by sinsiya 2012. 12. 10.



11월 24일, 몇 해 전에 참여했으나 성사되지 못 했던 영화두레의 두 번째 시도가 결국 성공하여 투자자 자격으로 영화 26년의 시사회를 다녀왔다. 그간의 경험으로 볼 때 관객들의 매너가 그다지 좋지 않은 편인 신촌의 아트레온이라는 점은 아쉬웠다. 하지만 이 엄청난 이야기를 어떻게 영화로 담아내었을지 궁금하여 견딜 수 없었다. 기대를 잔뜩 안고 한강을 건넜다. 



1시간 전에 여유있게 도착했음에도 좋은 자리를 잡지는 못 했다. 엄청난 인파가 몰렸다. 간단히 샌드위치를 먹고 와서 극장 안에 들어섰다. 옆자리 앉으신 초로의 남자분께서 술냄새를 풍기고 10초에 한번씩 입에서 소리를 내셨다. 이를 제외하면 나무랄 데가 거의 없이 상영시간 내내 관객들의 매너도 좋았다. 다만 지각생들이 한참 뒤에 들어와 자리를 확인하려고 핸드폰을 꺼내 들고 두리번 거리는 것은 옥의 티. 암순응 된 다음에 지금 나오는 부분이 중요하지 않은 장면인지 확인하고 조심스럽게 착석하는 기본 매너가 정착되기엔 아직 어려운가보다.


어린 나에게 만화의 재미를 알려주신 어머니 덕에 어릴 적부터 만화를 손에 달고 살았다. 초등학교 시절에 윤승윤, 고행석, 김수정, 이현세, 허영만 등의 작가들은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알려주었다. 만화가가 되고 싶다고 부모님을 조르고 졸라 도구도 구입하여 연재를 해 본 적도 있다.(반 친구들에게...) 그러면서 자연스레 미술학원도 다니게 되었지만 그림에 큰 소질이 없는 걸 깨닫고 그냥 하던 공부와 글쓰기에 전념하던 기억이 있다.


어릴 때부터 글쓰는 재주 덕을 많이 보고 책도 내고 살아왔지만 텍스트만이 아니라 그림까지 곁들여진 만화만이 주는 상상력과 몰입력은 확실히 강력하다. 내 성향상 아무래도 그림체보다는 스토리나 캐릭터에 몰입하다 보니 고등학교 시절에는 이현세, 대학부터는 허영만 선생님의 작품에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물론 몇몇 웰메이드 일본 만화도 즐겨보곤 했었다. 


여기까지도 서론이 길다. 각설하고, 웹툰이 널리 퍼진 후에야 그런 게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중에 강풀이란 작가를 만나게 되었다. 바쁜 와중에도 그의 대부분의 작품을 다 감상하였는데, 강풀 작품의 다양한 스펙트럼만큼 장르도 다양하지만 '그대를 사랑합니다'라는 작품과 '26년'이라는 작품은 가장 인상적이었고, 웹툰을 보면서 눈물을 질질 짜게 한 유이한 것들이었다. 물론 두 작품에 흘린 눈물의 성격은 다르다. 


지성인이라 불리우던 대학 시절에도 '그 해 광주'에 대해서 솔직히 잘 알지 못 했다. 근현대사를 제대로 배우지 못 한 우리네들이 다 그렇듯이. 관심을 갖게 된, 아니, 그런 끔찍한 역사가 있다는 걸 알게 된 계기가 된 것은 처음 벤처를 할 때 우연찮게 광주에 있는 국립대학교에 강의를 하게 되었을 때였다. 초대해 주신 교수님의 권유에 의해 망월동을 방문하게 되면서 교육 기관에서 배우지 못 한 이 나라 역사의 이면에 대해 알게 되었다. 


대한민국 사람이면서 역사를 영화로 배운 이들, 소설로 배운 이들이 많다. '26년'은 얼마 지나지 않은 현대사의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영화 한 편 보면서 지나치게 흥분하고 죽이느니 마느니 하는 어린 친구들도 있는 것 같은데 정말 분노한다면 제대로 공부하고 제대로 알고 제대로 대처해야 한다. 특정 지역의 일만이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대한민국 사람이 저지르고, 대한민국 사람이 당한 역사적 사실이다. 




30만원! 내가 본 영화 중 가장 비싼 티켓이다. 

티켓팅 과정은 주최측의 부족한 준비가 약간 아쉬웠다. 자원봉사자인지 관계자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개인에 따라 자리를 안내해주는 응대 요령이 사람마다 편차가 있었다. 상영 후 퇴장할 때 나눠주어도 될 길다란 포스터를 미리 배포하는 바람에 영화 보는 동안 서로가 옆 사람에게 불편을 줄 수 밖에 없었다. 영화 상영 전 식사를 하러 나간 이들에게는 짐을 하나 더 준 셈이 되었다는 것이 아쉬웠다. 티켓팅도 출력물을 가지고 수작업을 할 것이 아니라, 이왕 일반인들에게 투자 받은 김에 재능기부를 받아 Ruby로 만든 간단한 프로그램 하나 돌려도 되지 않았을까 싶다.


26년의 줄거리는 여기서 자세히 다룰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원작은 2006년 작이지만 현재도 꾸준히 읽히고 있다. 강풀 작가의 다른 작품이 궁금하여 보려하니 유료였는데 이 작품은 카피레프트를 선언하여 무료라고 한다. 시사회 전에 전체를 또 정주행하며 읽어 보았다.




영화의 도입부분은 애니메이션으로 시작했다. 제작비용 때문이겠거니 하고 넘겨짚었으나 제작비는 실사로 찍어도 같았다는 제작 관련 뉴스를 본 기억이 있다. 그럼 심의에서 등급을 조절하기 위해서였을까? 자세한 내용은 뉴스를 참고하기 바란다. 애니메이션으로도 충분히 사실적이고 충격적이었기다. 


강풀의 원작은 그 자체로서 영화적 요소를 많이 담고 있다. 만화만 보아도 이미 영화를 보듯 카메라의 위치, 인물의 시점, 심지어 호흡소리까지 느껴질 정도이다. 그럼에도 예전 영화화된 작품들보다는 영화적 요소에서도 나쁘지 않은 점수를 주고 싶으며, 하나의 작품으로서 괜찮은 편이다. 모두라고는 할 수 없으나 실제 있는 듯한 캐릭터의 생동감도 좋다. 


만화를 보면서 상상했던 장면들이 배우들의 액션으로 보여지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돈을 내고 볼만한 영화이다. 실제 역사와 실존 인물(그 사람)을 배경으로 김갑세라는 대기업 회장과 그의 아들(영화에서는 양자로 설정된다), 각기 다른 배경을 가졌으나 '그 날'의 아픔을 가진 핏줄들이 만나 사죄를 받기 위해 펼치지는 과정에 수호파라는 폭력조직, '그 사람'의 비서('그 날'의 아픔을 가진 또 한 명의 피해자)와 공안 전문 수사관이 벌이는 비밀스러운 작전과 갈등은 관객을 몰입시켰고 조직폭력배 출신의 곽진배는 카리스마 있는 모습으로 관객을 압도하기도 했다가 우스꽝스러운 모습, 입에 착 달라붙는 전라도 사투리로 관객을 웃기기도 했다.



아쉬웠던 것은 원작 자체가 개성과 사연이 뚜렷한 많은 캐릭터와 그들 간의 숨겨진 이야기, 우연과 운명의 기막힌 인연, 무릎을 치게 만드는 대사 등을 다 담고 있기에 영화화 되는 과정에서는 어쩔 수 없이 생략되거나 단순화 시킨 부분이 있다. 허나 이는 동행을 포함하여 원작을 보지 않은 이들은 느끼지 못 했다고 하니 아무래도 원작을 영화화 한 작품의 공통적인 특성이라 할 수 있겠다. 마무리 부분이 조금 늘어졌다 생각했는데 이 역시 동행은 반대하니 원작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하겠다.






무대 인사 장면이다. 


이 영화의 캐스팅도 뉴스를 통해 접했었는데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고 찾아보기 귀찮다.

일단 곽진배, 이 강한 캐릭터에 진구가 캐스팅 되었다고 했었을 때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1. 곽진배와 100% 싱크!

2. 진구의 기존작 캐릭터의 연장선


보고 난 소감은 역시 둘 다였으나, 중요한 건 기존 캐릭터와 겹치건 말건 진구가 열라 멋있고 곽진배에 100% 동화되었다는 것이다. 건달 시절의 진지한 연기, 포장마차에서(원작에서는 집이라 기억함) 어머니의 칼에 상처를 입었을 때 끌어 안아주며 달래주는 뭉클한 연기, '그 분'의 집 앞에서 바리케이트를 사이에 두고 벌이는 익살 등 진구라는 배우의 역량이 잘 표현되었다.

심미진을 한혜진이 맡았을 때는 원작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그녀의 진지한 연기는 일품이었다. 위 사진에도 보이듯 실물은 더 예뻤고 얼굴은 정말 작았다. 


다른 배우들의 캐스팅도 원작과 비교하여 높은 싱크율을 보였고 중년 배우들의  진지하고 실감나는 연기는 발군이었다. 다만 임슬옹군의 연기는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있다. 원작에서의 캐릭터와 에피소드가 변형되어 그런 탓도 있지만 필요 이상으로 많은 씬에 등장하여 스토리의 전개가 어색했으며 발성 역시 어색했다. 원작보다 너무 잘 생겨서 일 수도...?




투자자들이 모인 시사회의 특성상 엔딩크레딧의 끝까지 전 관객이 같이 보았다. 물론 내 이름도 이 사진에 있다. 15,000명이라는 일반 시민들의 두레가 영화를 만드는 데 큰 보탬이 된 영화!

워낙 많다보니 엔딩크레딧만 보는 데도 한참 걸리지만 후원자 이름을 원하는 이름으로(5자 이내) 걸 수 있어서 재치있는 문구 찾아보는 깨알같은 재미도 있다. 



포스터를 방안에 붙여 두었다. 제작진과 출연 배우, 강풀 작가의 친필 사인과 문구 역시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아래는 역시 아이폰으로 촬영한 배우들의 무대 인사다. 즐감하시길...!



일 때문에 바쁜 나머지 두서 없이 후기를 적었다.

강풀의 원작은 여기를 누르면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