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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SIYA-IT 이야기

Being Digital 감상문

by sinsiya 2012. 10. 28.

< 註 : Being Mobile이란 소재로 글을 써도 이미 식상한 2012년이지만 10여년 전 Being Digital 시대에서도 아나로그로 사업을 하던 나를 반성하며 예전의 감상문을 다시 꺼내어 본다 >

 

 Y2K로 떠들썩했던 2000년 1월 1일, 우리 나라에서 최초로 이동통신서비스를 시작했던 011은 아날로그 서비스를 중단했다. 신문 한 귀퉁이에 있던 그 기사는 아날로그의 종말을 고하는 듯했다. 「태초에 비트(bit)가 있었다.」디지털 시대의 창세기는 이렇게 시작될 것이다. 바야흐로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디지털 패러다임의 시대」다. 그 중심엔 인터넷이 있고, 신문과 방송은 하루도 쉬지 않고 인터넷만이 살길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대통령은 인터넷 10대강국으로 진입하자고 선언했고 세계 많은 석학들도 인터넷이 일궈낸 이 같은 디지털 패러다임이 인류 역사에서 지난 천년동안 일어났던 변화마저 초라하게 만들 「혁명」을 앞으로 몇 년 동안 이뤄낼 것이며, 시간과 공간을 넘어 새로운 사회와 국가와 세계를 창조하고 개척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미래의 도시는 인터넷에 세워질 것이며 앞으로 모든 현실공간은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요소로서의 의미밖에 갖지 못할 것이라는 성급한 예견도 들려온다.

 

이러한 디지털 시대의 예언자인 네그로폰테가 우리 학교에서 강연을 했다니 미리 알지 못했던 것이 유감이었다. 어쨌든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는 나는, 우선 World-Wide-Web에서 「Being Digital」이란 책에 대한 정보가 얼마나 있을지를 살펴보았다. 그 중 흥미로운 내용은 이 책을 「사이버 비즈니스의 3대 바이블」로 소개한 것이었다. 이렇게 유명한 책을 알지도 못했다니, 새삼스레 그 내용이 궁금해져 내 방 책상 위에서 아직 새것으로 놓여있던 책을 한 장 한 장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정보의 유전자로 칭할 수 있는 비트가 우리의 일상생활에 끼치는 변화의 영향과 결과를 살핀 저서라 할 수 있겠다. 디지털의 의미와 그것이 우리의 생활을 어떻게 바꾸어놓을 것인가를 쉽고 재미있게 들려준다. 그렇다면 도대체 「디지털」이란 무엇인가? 네그로폰데는 디지털시대 물질의 단위는 아톰(Atom)이 아니라 비트(Bit)라는 명제를 내려 이제껏 만물의 근원은 「불이다. 물이다. 수(數)다」하던 「아날로그적」 철학 논쟁에 큰 방점을 찍었다. 바야흐로 이제 인류는 농업혁명, 산업혁명에 이은 제 3의 혁명인 디지털 혁명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저자의 서문을 보면, 그는 독서장애자이기 때문에 책 읽기를 싫어한다고 했다. 하지만 책 곳곳에서 펼쳐지는 그의 탁월한 표현력과 적절한 비유법은 세상이 공평한 것이라 믿는 순진한 학생들을 좌절케 할만했다. 네그로폰테의 자유분방한 발상은 일상적인 사고로는 잡히지 않는다. 그의 논리는 치밀하지는 않지만 유연하고 발랄하다. 그의 경이로운 창의성의 원천은 휴머니즘에 있다. 그는 개발을 위한 개발, 이윤만을 위한 개발을 거부한다. 그에게 기술개발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어야만 한다. 또한 인간과 기계의 인터페이스를 연구하는 전문가로서 그는 인간이 기계에 적응해야 한다는 어떠한 발상도 단호히 거부한다. 예컨대, 차세대 텔레비전의 발전을 높은 해상도, 더 좋은 색상, 더 많은 프로그램으로 생각하지 말고 송신자와 수신자 사이의 지능 분배의 전환으로 바라보자는 주장은 참신하다. 쌍방향성 창출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텔레비전 수상기 제작회사들의 방향설정이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가를 보여준다. 초고속정보통신망의 시급성을 주장하는 자들에 대한 일갈은 통쾌하다. 그는 궁극적으로는 원격통신이 광섬유망으로 수렴되겠지만 현재의 구리 전화선을 가지고도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배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구축되는 광대역 통신망은 사람들을 비트에 허우적거리게 만들고 자원의 불필요한 낭비를 초래한다고 경고한다. 그의 컴퓨터 인터페이스에 대한 논의는 아마도 갓 복학하여 한글97과 MS-OFFICE로 허둥대는 고학번 학생들을 후련하게 해주고, 동시에 마우스의 편리함에 감탄하는 사람들의 허를 찌른다. 미래에 대한 그의 전망은 흔하디 흔한 SF소설이나 영화보다 창의적이고 놀랍다.

 

나에게는 1부의 「혼합비트」와 3부의 「디지털 우화와 단점」이 가장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연산기능을 가진 코듀로이 양복지, 기억장치로서의 모슬린 천, 태양전지 기능을 가진 실크 등이 미래의 디지털 의상을 만드는 소재로 활용될 것이라고 그는 예견한다. 나아가 시디롬을 먹거나 병렬 프로세서를 선탠 로션처럼 바르고, 심지어 컴퓨터 안에서 생활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영원히 사라질 수 있는 가능성과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디지털은 인간의 사고 구조를 혁명적으로 바꿔놓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류는 순간적으로 사라질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영원할 수 있는 것을 이제껏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으니까. 또한 디지털과 이를 기반으로 한 인터넷은 우리의 생활양식도 크게 변화시킬 것이다. 홈 오토메이션이 등장해 주부가 가사노동에서 해방되고, 교실에서 오르간이 사라지고 전자키보드가 등장하고 PC로 숙제 검사를 하고, 뉴스 「페이퍼」가 사라지고, 사이버 국가가 등장하고 하는 등등의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휴머니즘이라는 주제가 책의 전면을 관통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흔히 보는 미래서들과는 뚜렷이 구별된다. 그러나 저자의 사회학적 상상력은 매우 제한되어 있다는 아쉬움이 있다. 대책없는 낙관론은 전형적인 공학도를 연상시켜 순진해보이긴 해도, 그 빈약한 논리로 인해 디지털화가 가져오는 생활의 변화를 서술하는 제3부는 제1부나 제2부에 비해 훨씬 설득력이 떨어진다. 미 국방성의 알파(ARPA,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에 대해 몇차례 언급하면서도 그것이 냉전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지나치고 있으며, 정보테크놀로지의 발달에서 차지하는 군산복합체의 역할에 대해서도 전혀 눈길을 주지 않는다. 기술과 개별적 인간 사이의 관계는 중시하면서도 기술과 사회의 관계는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가진 개인주의적 휴머니즘의 한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는 빈곤이나 전쟁과 같은 비극적인 문제들이 디지털 혁명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는 주장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런 문제들이 정치가들에 의해서 해결될 수 있으리라 믿지도 않는다. 그는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조화로운 세계를 만들어가는 힘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과연 역사상 출현한 다른 테크놀로지에 비해 그렇게 특별한 지위를 부여받을 만한 이유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는 정보불평등도 그는 매우 가볍게 다루고 있다. 그는 정보불평등을 극복하기 위해 전개되는 다양한 노력에 대해서도 대수롭게 평가하지 않는다. 컴퓨터 네트워크의 발달이 기존의 사회질서에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학자들의 예측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 그의 예측처럼 조화와 협동의 네트문화가 기성질서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지 아니면 기존의 사회질서가 네트문화를 흡수해버릴지 쉽게 예측할 수는 없다. 물론 공학도가 일급의 사회평론가를 겸할 필요는 없다. 그의 사회학적 논의가 공학적 부분에서 나타난 것과 동일한 수준의 권위와 품격을 갖고 있으리라 기대할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정보테크놀로지 발전의 사회적 결과에 대해서는 훨씬 풍부한 연구가 있고 네그로폰테의 주장은 매우 약한 목소리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나에게는 오히려 대책없이 그려진 디지털의 유토피아가 두렵게 다가온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불평등은 가진 자에 속하는 네그로폰테의 논리에서는 결코 해결될 것 같지 않다.

 

일각에서는 한국경제가 수백년 만에 호기를 맞았다고 한다. 굴뚝산업에서 지식산업,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무대가 바뀌는 바람에, 산업화에 늦었지만 정보화에서는 한국이 선진국을 앞설 수 있는 절호의 타이밍이라는 것이다. 우리 경영학과 김완순 교수님의 말씀을 빌자면, 변화에 민감하고 속전속결로 해치우는 민족기질이, 속도와 순발력을 요하는 디지털 패러다임에 적합하다고 한다. 하지만 「타임」지에 날 만큼 세계적인 인터넷 사용국가이고, 사이버 주식 인구 또한 세계 2번째인 한국에서 아직 세계적인 인터넷 기업은 등장하지 않았다. 결국 관건은 매체가 아니라 지식․정보의 내용물을 창조하고 요리하는 인간에게 있다는 말이다. 그것은 아날로그 시대에 갈고 닦은 창의성의 몫이다. 아날로그를 유물화할 것이 아니라 지금 그 둘을 서로 만나게 해야한다. 인터넷기업과 굴뚝기업, 구세대와 신세대, 기술과 문화를 만나게 해야 한다. 그것이 디지털 시대를 앞서가는 길이고 정보화에 뒤지지 않는 길이다. 디지털은 결코 복음도 저주도 아니며, 인터넷은 새로운 유통방식, 새로운 시장일 뿐이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문제는 늘 인간이고 인간들이 살아가는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