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혹은 비평

영화 - 소나티네, 기타노 다케시

sinsiya 2012. 10. 28.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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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9일, 나른한 오후에 친한 여자 애와 함께 영화도 볼 겸, 간만에 얼굴도 볼 겸해서 종로에 갔다. 예약을 하지 않고 갔기 때문에 주변 극장을 전전한지 1시간, 코아 아트 홀에 가보니 “소나티네”라는 영화가 상영 중이었다. 일본 영화에는 별 관심이 없던 나지만, “빠르고 강렬한 폭력의 선율”이라는 카피가 맘에 들어 표를 샀다. 개봉한 지는 이틀 째였지만 빈  자리가 드문드문 있었다. 영화 시간이 조금 남았길래 일식집에서 식사를 했는데, 형편없는 서비스에 기분이 나빠져서 영화를 보기 전 컨디션은 별로 좋지 않았다.


  “소나티네”는 “하나-비”를 만든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이다. “하나-비”는 일본영화 국내 개봉 1호작이라는 프리미엄에도 불구하고 다소 진지함으로 인해 흥행에서 재미를 보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번 “소나티네”는 간단한 이야기 구조와 적절히 가미된 유머로 풀어낸 화두로 오히려 4년 뒤에 만든 “하나-비”보다 대중에게 한발 더 친근하게 다가왔다. "칸느, 주목할만한 시선"에 초청되면서 개그맨, 배우, 감독, 토크쇼 사회자, 스포츠 해설가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만능 엔터테이너, ‘기타노 다케시’를 세계에 알린 작품인 동시에 본인이 가장 아끼는 작품이라고 한다. ‘기타노 다케시’의 전력을 들으며 문득 내가 좋아하는 ‘무라카미 류’가 생각이 났다. 그도 영화를 만들었었다.


  “소나티네”는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야쿠자 중심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당연히 무지하게 폭력적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폭력의 볼거리에 비중을 둔 야쿠자 영화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제목에서 느껴지듯, 세 개의 악장으로 구성된 이 영화는 폭력의 세계, 순수로 돌아간 동심의 세계, 마지막 죽음에 이르기까지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1악장은 ‘폭력’이다. 한국 영화, ‘넘버-3’를 연상시키는 폭력들이 이어진다. 하지만 폭력은 ‘넘버-3’에서와는 달리 무뚝뚝하고 차갑다. 고리대금업을 하는 야쿠자의 중간 보스인 무라카와는 기타지마 조직의 간부로 도쿄의 한 구역을 책임지고 있다. 주인공 무라카와 역은 감독인 ‘기타노 다케시’가 맡았다. 도쿄의 야쿠자들은 비즈니스맨이나 샐러리맨들처럼 규칙적이며 사무적이다. 그 중에서 무라카와는 눈 한번 깜짝하지 않고 사람을 기중기에 매달아 강물에 처넣는 프로페셔널한 야쿠자이다. 어느 날 무라카와는 우호관계에 있는 오키나와의 조직을 도와주고 오라는 보스의 명령을 받는다. 그는 야쿠자라기보다는 동네 양아치정도로 보이는 부하, ‘가타기리’, ‘켄’ 등을 데리고 오키나와로 향하지만, 이야기만 잘하면 끝날 것이라는 보스의 말과는 달리 섬의 공기는 점점 무거워진다. 그러다 갑자기 총격전이 벌어져 몇 명의 사상자를 낸 일행은 바닷가의 허름한 은신처로 숨는다.

 

  2악장, ‘순수’는 가벼운 스케르쵸의 형식이다. 코미디언 스타인 ‘기타노 다케시’의 유머감각이 빛을 발한다. 바닷가에 도착한 무라카와 일행은 마치 패러다이스에나 도착한 듯 현실의 세계를 잊은 채 한가로움을 만끽한다. 야쿠자들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천진난만한 동심으로 돌아간다. 특히 인형놀이를 하다가 바닷가의 스모로 이어지는 장면은 관객을 포복절도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난 웃음을 참지 못해 의자 밑으로 굴러 떨어질 뻔했다. 그 외에도 러시안 룰렛 게임, 폭죽놀이, 구덩이에 빠뜨리는 장난 등으로 관객과 놀이를 한다.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자연에 동화된 동심의 세계이다. 그러나 이들의 평화는 마치 사형수에게 주어지는 죽음 직전의 진수성찬과도 같은 것이다. 야쿠자치고는 다소 어수룩해 보이는 조직원들의 이런 일거수일투족은 영화의 양념적인 구실을 하기도 하지만, 무라카와의 계속되는 유치한 장난은 일상의 반복에서 존재의 이유를 찾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허무를 빗대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도 무라카와는 꿈을 통해 죽음에 대한 명상을 버리지 않는다. 그는 한 여인을 만난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을 죽인다. 여인은 자기 남편을 죽인 무라카와의 강인함을 흠모한다. 무라카와는 "무서워서 총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그러나 "죽음을 너무 무서워하면 죽고 싶어진다"고 죽음에 대한 그의 미묘한 심정을 말한다. 이 갑작스럽게 등장한 여인(보다보면 상당히 귀엽다)은 나중에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난 무라카와를 기다리기까지 하는데, 이 영화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부분이자 튀는 부분이지만 이렇게 무라카와의 생각을 끌어내는 도구로 사용된다. 예쁘지는 않지만 상당히 매력적인 여인으로, 비오는 날 무라카와와의 섹스 직전 당혹스럽게 보여준 가슴은 이 영화의 유일한 야한 장면이다.

 

  느리고 정적인 3악장은 ‘죽음’이다. 행복하기만 하던 두 번째 악장은 배신으로 얼룩진 야쿠자의 비열함으로 인해 종지부를 찍고 만다. 부하를 잃은 무라카와는 복수를 위해 보스를 찾아가 무참히 기관총을 난사하고 스스로의 생도 마감하는데, 이 마지막 장면은 무척 인상적이다. 폭력 미학의 스타일리스트로 불리는 ‘기타노 다케시’는 악장이 더해가면서 단순한 감각의 스타일리스트가 아닌 대가의 풍모를 보여주고 있다. 구차한 설명보다 자기만의 스타일로 상징과 유머로 죽음에 대한 명상과 인간 내면에 숨어있는 폭력성에 대한 고찰을 대중적인 접근으로 풀어간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일단 재미있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표현한 감독의 재능이 돋보인다. 음악 효과도 빼놓을 수 없다. 영화 보기 직전 읽어본 팜플렛에서의 ‘사람의 감성을 읽어내는 정확한 코드를 갖고 있는 음악감독’ 이라는 소개 덕분에 주의 깊게 들었는데, 기대한 만큼이었다. 야쿠자 영화라는 타이틀에서 예상할 수 있는 것과 이 영화에서의 폭력은 다르다. 흔히 생각하는 영화 속의 죽음과도 방식이 다르다. 감독은 배우에게 죽기 전의 구차한 대사 따윈 부여하지 않는다. 죽기 전의 단서도 보여주지 않은 인물이 총을 맞는다. 그리고 죽는다. 죽인 자는 돌아선다. 이런 식이다. 모든 것은 절제되어있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나서도 ‘무라카미 류’가 생각났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싶으면 죽어라’는 류의 말이 ‘기타노 다케시’의 대사에도 나타난다.

 

  영화관을 나와서 집에 가는 내내 영화를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잘 모르겠다. 드문드문 펼쳐지는 아름다운 영상들, 배가 아프도록 웃었던 장면들, 한 마디가 의미심장한 대사들, 그 속에서 거장, ‘기타노 다케시’는 많은 것을 이야기하려 했다. 하지만 그는 관객들이 그것을 다 알기는 원하지 않는다. 장담컨대, 그는 거만하다. 그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한 편의 영화에서 그는 보는 이를 압도한다. 그리고 자신의 스타일로 리드한다. 그리고는 자기 맘대로 결론을 내버린다. 몇 개의 명대사들을 통해 그는 특히 이 시대를 사는 나약한 남자들의 열등감을 자극한다. 얼마나 ‘무라카미 류’와 비슷한가...  나의 이 촌평 또한 그는 비웃을 것이다. 아무래도 좋다. 어쨌든 그는 나에게 6000원이 넘는 재미를 선물해 주었고 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으니까... 덕분에 일식집에서의 기분 나쁜 일은 이미 잊었다. 이 영화, 아는 사람들에게 적극 추천해 주고 싶다.

 

 

< 註 : 본 감상은 10여년 전, 코아아트홀을 드나들던 시절에 작성된 것임을 밝혀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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