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와 푸쉬킨의 비극인 맥베스와 보리스 고두노프 비교
영국과 러시아 문학의 자존심이라고 말할 수 있는 셰익스피어와 푸쉬킨의 비극인 맥베스와 보리스 고두노프. 여기서는 이 두 극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제시하고 그 중에서 극 중 주인공에 대한 사항을 구체적으로 비교해 보겠다.
● 공통점
「맥베스」와 「보리스 고두노프」는 일단은 모두 비극이다. 또한 두 극의 내용은 모두 왕위 찬탈에 대한 정치극이다. 주인공은 왕가의 정통성을 무너뜨리고 왕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둘 다 억제하지 못 한 인간의 야망이 비극의 원인이 된다. 각 극의 주인공인 맥베스와 보리스 고두노프는 둘 다 인간적 욕망으로 인하여 살인을 저지르고도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 그리고 나서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죄의식으로 인해 결국에는 괴로워하다가 환상내지는 환음에 시달리며 예전의 용기와 열정을 잃고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소재를 살펴보면 두 극 모두 역사를 문학 속에 넣은 것이다. 모두 각 나라의 역사적인 사실과 전해오는 민담 등을 종합하여 작가가 재구성, 재해석한 후 배경으로 설정하였다.
맥베스에서 셰익스피어는 바로 전 시대의 스코틀랜드 왕실의 역사와 관련된 설화들을 택했다.
보리스 고두노프에서는 러시아 역사상 아마 가장 극적이었던 시대인 18세기초의 참칭자 가짜 드미뜨리의 제위 등극을 택했다. 러시아 역사상 위기 가능성이 증명했던 것처럼 사회의 하층계급의 대표자였던 그리고 파계 수도승인 참칭자 그리고리의 제위 등극은 일반적인 사회 불안의 여파 속에서 이루어졌다. 참고로 말하자면, 이 소재는 세계 희곡 문학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다루어져 온 인기 있는 것들 중의 하나였다. 이러한 소재와 영지 주변의 삶이라는 소재에 연대기, 역사담, 성자전이란 문학형식을 빌려 계승되어 오던 중세 러시아 문화가 생생히 보존되어 있는 까람진의 [러시아 역사]중에서 푸쉬킨은 11권을 참조로 하여 희곡 「보리스 고두노프」에 이러한 중세 문학의 제문학형식들을 신중히 사용함으로서 중세 러시아 정신을 재생시키는데 성공했다. 여기서 「보리스 고두노프」의 등장 인물들은 독립적 개별적 존재들이라기보다는 중세를 비롯한 푸쉬킨 당시의 시대의 모스크바 사회의 다양한 계층의 대표자들이며 서로 충돌하고 있다.
푸쉬킨은 이 작품에 역사의 흐름을 과거의 역사를 통해 되새기고 있다. 하지만 푸쉬킨은 단순히 역사를 훑어보고 과거를 진실을 알리려는 것으로 생각할 수 없다. 역사 속에서 드러나는 부조리와 이 작품 속의 등장 인물들의 속성들을 나타내면서 당시 현재의 황제를 중심으로 해서 귀족들, 그리고 심지어는 민중들까지 포함해서 그들 스스로의 의의를 만들어감과 동시에 그들 자신들이 나가야 할 방향을 그려주고 있는 것이다. 푸쉬킨의 작품은 결코 역사 속에서 묻혀질 작품으로 남아있을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의 독자라 할 지라도 푸쉬킨의 작품 내용은 바로 그 독자에게서 현실이 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푸쉬킨의 작품의 가장 큰 특성중 하나인 그의 화려한 문체를 볼 수 없더라도 그가 세계 곳곳의 독자들을 가지고 있는 이유이다.)
● 차이점
일단 극의 구성을 볼 때 맥베스는 5막으로 막별로 구조가 나뉘어지는데 반해 보리스 고두노프는 각각 23개의 장면별로 나눌 수 있다. 또한 맥베스에서는 왕실 귀족들만이 모든 이야기의 주를 이루지만, 보리스 고두노프에서는 니꼴까 같은 백치 뿐 아니라, 신부들, 군인들, 일반 백성들까지 등장하여 대사를 통해 직접적으로 자신들 입장에서의 상황 해석을 말해주고 사건에 관여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맥베스에서는 주인공의 후손에 대해 언급되어 있지 않으나, 보리스 고두노프에서는 고두노프의 아들 표도르 고두노프가 등장하고 금방 죽임을 당하지만 아버지의 왕위를 물려받기도 한다. 맥베스에서는 맥베스의 부인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그녀의 충동질에 의해 맥베스가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보리스 고두노프에서는 고두노프 부인의 영향력에 대해서는 알아 볼 수가 없다.
맥베스는 자기가 죽인 왕의 아들이 이끈 군사를 통해 파멸하지만 보리스 고두노프는 왕실과는 상관없는 참칭자 드미뜨리인 그리고리가 이끈 군사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또한 정통성을 파괴한 보리스 고두노프도 정통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반란에 의해서 죽게 된 것이 특징이며 그 반란군 또한 민중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작가의 시선도 곱지 않다. 그리고 최후에 순간에 즈음하여 맥베스는 오히려 더욱 발악하며 애써 당당하려 하지만 보리스 고두노프는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한 죄값을 기다리며 자신의 군사들의 승리조차 「헛된 승리」(#20)였다고 한다.
맥베스는 읽기에 좋을 뿐 아니라, 극적인 구조를 가졌기에 지금까지도 수없이 상연되고 있다. 그리고 인물들의 행동과 심리 묘사가 탁월하고 개개 사건이 흥미진진하여 그 역사적인 배경을 알지 못하더라도 독립된 시점에서 충분히 감상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독자와 관객은 정통성에 대한 작자의 태도라든지 인물들의 심리 상태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등과 같은 몇 가지 축약된 문제를 생각하며 감상할 수 있다. 그의 극들은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고 있으며 비극에 있어서 그의 자리는 가히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보리스 고두노프의 구조는 여러 가지 점에서 극적이기보다는 서술적이다. 이 작품은 대화체로 된 기록이기 때문에 상연되기보다는 읽혀지기에 훌륭하다. 이 작품이 러시아의 극에 대변혁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자 한 푸쉬킨의 소망은 결코 실현되지 않았다. 발표 직후와 푸쉬킨의 사후에 이 작품의 영향은 상당한 것이었지만 본질적으로 중요하지 않다. 러시아는 결코 진실한 의미의 독창적인"셰익스피어 식"의 비극을 생산해 내지는 못했다. 보리스 고두노푸에서 푸쉬킨은 등장 인물들의 행위나 운명보다는 러시아의 비극적 운명과 러시아의 극적인 운율에 관심을 가졌다.「보리스 고두노프」는 이때까지 유행하던 프랑스적인 형식과는 대치되는 러시아의 낭만적, 셰익스피어 풍의 비극으로 된 첫번째 에세이이다. 바로 러시아의 역사를 자신의 문학 속에 넣음으로서 그는 자신의 러시아 문학의 중심이 되고자 했으며 잘못된 역사의 흐름과 역사를 흐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으며 심지어 지식인들이나 역사의 중심이 될 수 있는 인물들이 어떤 행동을 보여주어야 하는가하는 문제까지 그는 다루고 있는 것이다.
● 두 작품의 주인공 설정과 작가의 시선에 대한 비교
맥베스는 셰익스피어 작품의 비극의 주인공답게 충분히 위대한 인물이다. 용기며 야심이며 열정이며, 또는 상상적 능력이 어떤 비극의 주인공에 못지 않게 뛰어난 인물이기는 하나 그는 확실히 성격에 치명적인 결함을 가진 인물이다. 그것은 그가 도덕감이 희박하다는 점, 즉 그는 왕자다운 고상한 성품을 지니지 못한 인물이다. 그의 인격상의 이와 같은 파행은 실체와 가상과의 괴리라고 할까, 결국은 그를 비극적 인물로 만들게 마련이다. 이것은 이 극에서 되풀이 나오는 의복에 관한 심상에서 볼 수 있다. 『지금은 그도 느끼렷다, 거인의 옷을 난쟁이가 훔쳐 입은 격으로 왕의 칭호도 몸에 헐렁함을』(5막 2장). 국왕을 시역하고 왕위를 찬탈한 맥베스가 다른 사람들 눈에는 흡사 거인의 옷을 훔쳐서 입고 있는 난장이같이 우습게만 보였던 것이다. 이것은 비극의 위대한 주인공이기는 커녕 한낱 광대의 모습이다. 장차의 그러한 자기의 모습을 이미 무의식중에 의식하였는지, 자기에게 코오더 영주의 칭호가 국왕으로부터 내려졌다는 것을 전해들었을 때 그는, 『코오더 영주는 생존해 있쟎소. 왜 내게 남의 옷을 빌어다 입히려 하시오?』(1막 3장)라고 하였으며, 이후 곧 마녀들의 예언이 들어맞을 것을 알자, 그가 망연자실 하는 것을 보고 뱅코우는 『새 영예는 내렸으나 낯선 의복 모양 몸에 잘 맞지 않는가보군. 한참 입고있지 않고서는』(1막 3장)라고 말한다.
맥베스는 일단 결심했던 시역을 주저할 때에 또한 기묘하게도 무의식중에 자기의 성격을 의복을 가지고 나타낸다. 『게다가 나는 온갖 사람들로부터 황금의 인기를 얻었오. 새 광채가 날 때 지금 몸에 지녀보고 싶구려. 일부러 내던질 필요는 없쟎오?』(1막 7장), 그리고 『낡은 옷이 새 옷보다 입기 편한 그런 사태나 벌어지지 않았으면!』(2막 4장), 『아뭏든 그 광란한 마음을 자제심의 혁대안에 조여 둘 수 없는 것만은 분명하오.』(5막 2장)
그는 비극적인 인물답게 위대함을 가지면서도 고상한 성품을 갖지 못하며 한편으로는 자기에게는 어울리지도 않는 권력의 장악을 위해서는 국왕이며 친지를 마구 살해하는 잔인하고도 엉큼하고 보잘것없는 그의 성격이 비극을 초래하는 것이다.
맥베스는 질서의 파괴자이다. 그는 자기 개인의 질서뿐 아니라 국가/사회의 질서를 파괴했다. 그는 국왕을 시역한 직후 「이젠 잠을 자지 못한다!」하고 울부짖는 소리를 듣는다. 「이제 잠을 자지 못한다. 맥베스는 잠을 죽여버렸다. 고민이 엉긴 실타래를 풀어주는 잠, 나날의 생명의 죽음인 잠, 상처난 맘엔 향고인 짐, 대자연의 진미인 잠, 생명의 향연의 제일의 영양분인 잠을.」(2막 2장) 맥베드가 잠을 자고있는 던컨왕을 죽였다는 것은 던컨왕에 대해서 뿐 아니라, 신성한 잠 자체에 대해서도 가증한 행위인 것이다. 이 수면의 심상은 마녀들은 선원들로 하여금 잠을 자지 못하게 할 것이며 (1막 3장), 뱅코우조차도 마녀들을 꿈에 보고 안면을 방해받아 「인자한 천사들이여, 부디 망상을 막아다오, 잠이들면 살그머니 찾아오는 망상을!」(2막 1장)이라고 말하듯이 안면을 영영 잃은 맥베드는 불안에 시달린다. 그리고 또한 맥베스가 눈에 보인다고 독백하는 단검이나, 그가 자객을 시켜 살해한 뱅코우의 유령이나, 마녀들을 마지막으로 찾아가서 보게되는 유령이나 스코틀랜드 역대왕의 환영도 이 불면의 악몽이 빚어내는 환상인 것이다. 맥베스의 눈에는 인생이 「천지가 떠드는 이야기」나, 「발작적인 열병」같이 비치는 까닭도 대지 자체가 「열병에 걸린」까닭도 이러한 환상 때문인 것이며 맥베스의 범죄는 그의 성격 속의 악몽에 의해서 마치 최면술에라도 걸린 사람같이 저절로 실행으로 접근되는 것이다.
맥베스는 마음속에 시역의 싹이 트면서부터 범행을 단행할 때까지 결의와 주저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불안에 사로잡히지만 시역을 단행한 후부터는 이제까지의 우유부단한 태도와는 전혀 대조적으로 되며 그리고 부인과는 정 반대적인 입장에 서게되는데 그것은 그의 마음속에 불안이 사라졌기 때문은 아니다. 도리어 불안의 심상은 한층 더하여 불면과 「무서운 악몽들」(3막 2장)을 안게되고 한편으로는 이 불면과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차피 건너가던 피의 강을 도중에서 되돌아오느니보다는 그냥 건너가 보자는 심정으로 마구 폭군 노릇을 자행하게 마련인 것이다.
보리스 고두노프 또한 질서의 파괴자이다. 그는 죄의식에 시달리면서 항상 불안해한다.「최고 권력을 성취하여 태평 세월을 통치한지 이미 여섯 해째. 그러나 내 마음엔 행복이 없구나.」(#7), 「그래, 양심이 깨끗지 못한 자는 불쌍한 법」(#7) 보리스 고두노프에서는 궁전에서 말한 고두노프의 대사를 통해 그가 최고 권력에 있는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며 자신의 최후의 비장한 각오로 예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리스 고두노프에서는 보리스 고두노프가 시역을 한 구체적인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대사가 맥베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어 그의 성격에 대해 자세히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그가 죽음이 임박하면서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해 반성하는 모습이 보인다.「오, 하느님! 하느님! 곧 당신 앞에 서리다. 제게는 참회로써 영혼을 정화시킬 겨를이 없나이다.」, 「나는 신하로 태어났으니 또한 암흑 속의 신하로 죽어야 마땅하다.」(#20) 죽기 직전 아들에게 말한 그의 대사를 볼 때 그가 이미 자신의 죄악을 인정하고 뉘우치고 있으며 신 앞에 굴복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는 말년에 임박하여 인격적으로 성숙한 모습을 보인다. 「그가 패배했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는가?」(#20)라는 대사를 통하여 그가 인간적 욕심이 부질없음을 깨달았음을 알 수 있고, 「다만 과인은 우선 백성들의 소요를 진압하여야 하는 도다.」(#20)라는 대사를 통해서 그에게서 백성을 생각하는 황제 같은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결론을 내리자면, 맥베스에서의 작가는 맥베스에게 비극의 주인공다운 위대함을 부여하지만 그보다 그의 성격적인 결함에 의한 파멸과 그의 불안함이 주가 된다. 반면에 보리스 고두노프에 대한 작가의 시선은 균형이 있다. 왕위를 찬탈한 두 인물에 대해 이토록 상이한 설정과 평가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