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비판
대중문화에 대한 미학이나 대중의 취향에 대한 논의는 주로 미국의 대중문화 찬반논쟁을 통해 이루어졌다. 엄청난 대중사회적 팽창을 보여주었던 50년대 미국 사회를 배경으로 대중문화 긍정론자들과 부정론자들은 대중문화의 가치와 사회적 의의에 대해 치열한 논전을 벌였다. 논전은 대개 대중문화에 대한 부정론자들의 공격에 대해 긍정론자들이 반박하며 대중문화를 방어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이론적인 논쟁이기는 하지만 대중문화를 보는 우리의 일반적 시각이 어떤 논리성을 가지는 것인지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부분이다. 여기서는 대중문화의 비판론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일반적으로 대중문화 하면 저질문화, 소비문화, 향락문화, 표준문화 등의 부정적이며 경멸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 지너(Giner)는 대중문화를 ①고급문화와 달리 영리적이어서 창작자 자신이 고유한 가치나 기술적 표현을 포기할 수밖에 없고, ②저속함은 고급문화의 질을 떨어뜨리며 ③폭력과 성을 강조하며 대중으로 하여금 현실을 주시하는 능력을 약화시키는 등 비합리적일 뿐 아니라, ④심리적으로 해독성을 끼치고, ⑤문화세계를 분열시킨다고 말하고 있다. 1)
따라서 갠즈(Gans)는 대중문화의 용어로서 매스컬쳐 대신에 파퓰러 컬쳐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대중문화의 부정적이고 경멸적 이미지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매스컬쳐는 언제나 파퓰러 컬쳐가 될 수 있지만, 파퓰러 컬쳐는 언제나 매스 컬쳐가 될 수 없다는 점에서, 이 두 용어가 유사성은 있으나, 엄밀한 의미에서 동일한 의미로 쓰일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맥도널드(D. McDonald)는 대중문화라는 표현으로서는 파퓰러 컬쳐보다 매스 컬쳐가 더 적절하다고 보고 있다.2) 맥도널드가 지적하는 대중문화의 심미적 특징은 이런 것들이다.
우선 대중문화는 동질화의 문화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이질적이고 다양한 가치와 수준의 문제들을 획일화하고 동질화시켜 버린다. 대중잡지, 예컨대 《라이프》같은 잡지를 보면 한국전쟁이나 베트남전쟁의 비참한 상황을 전하는 사진이 캘리포니아 해변이 비키니 패션쇼와 같은 지면에 동일한 비중으로 실려 있다. 대중문화는 이렇게 이질적인 내용을 혼합하고 융합하면서 표준화한다. 대중문화는 마치 공장처럼 분업화된 공정에 의해 만들어진다. 대중문화는 또 인류의 역사를 발전시켜 온 인간의 이성과 과학의 개념을 변질시키고 타락시킨다. 과거의 과학이 인간이 가진 최고의 합리성의 산물인데 반해 대중문화에서의 과학은 흔히, ‘이변’, ‘공포’의 개념과 연결된다. 예를 들어, ‘프랑켄슈타인 박사’나 ‘킹콩’같은 대중문화 산물에서 과학자의 역할이 바로 그런 것이다. 이렇게 획일적이고 표준화되고 타락한 대중문화의 미래는 암담하며 결국 그 대중문화에 의해 잠식되고 있는 고급문화의 미래도 암담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맥도널드를 비롯한 비관론자들의 주장이다.
대중문화의 비판론을 논하기에 앞서, 대중문화가 처음부터 왜 부정적이며, 경멸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는가를 알아보고자 한다.
첫째는 대중이라는 의미가 지니는 편견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대중은 교육수준이 낮고, 비이성적이며, 하류계층에 속하고, 저속하다는 편견이 있다는 것이다.(3) 예를 들면, 18세기 영국소설에 나타난 대중의 개념을 보면 조잡하고, 야만적이며, 비이성적이고, 구성도 제대로 되지 않은 집단으로 묘사되고 있다. 4)
둘째는 뉴미디어에 대한 편견을 들 수 있다. 오늘날 대중문화의 주요매체인 TV를 낮추어 보고 있다. 현재 우리가 고급 문화의 표현 수단으로 생각하는 책, 신문과 같은 인쇄물도 한때는 문화를 타락시키는 미디어로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영화 및 라디오도 한 때는 천한 대중 미디어로 여겼던 것이다. 5)
셋째, 옛 문화, 옛 것이 아름다웠다는 복고주의를 들 수 있다. 일반적으로 대중문화는 먼 옛 문화인 민속문화(folks culture)를 이룬 농민들이 산업화에 의해 도시로 이주하여 형성한 문화로서, 이같은 과정에서의 부정적인 면만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과거가 좋았다는 오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산업화 과정에서 야기된 부정적인 측면을 지닌 현대가 아무리 불행하게 보여도 옛날보다는 휴머니즘도 발전하였고, 도덕도 발전했으며, 모든 것이 발전했다는 것을 잊고 있는 것이다. 6)
대중문화는 이같이 부정적이고 경멸적인 의미를 처음부터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비판론도 심각하였다. 대중문화에 대한 비판은 18세기 대중문화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비판은 다음과 같다.
⑴ 대중문화물의 부정적 성격
대중문화는 고급문화와는 달리, 영리를 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그 내용이 저속하고, 통속적이라는 것이다. 이같이 대중문화는 영리를 목적으로 대량으로 생산되기 때문에, 광고주와 영합하여 향락풍조만을 조장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국의 매스미디어는 보도 및 해설과 같은 공적 기능보다는 영리와 오락에 치중하는 광고 매체로서의 기능에 충실하다는 것이다. 7)
대중문화 비평가인 Dwight McDonald에 의하면, 대중문화란 기업가에 의해 고용된 테크니션에 의해 제조된 문화에 지나지 않으며, 그 수용자는 단순한 수동적 소비자이며 그들의 문화에 대한 참여는 그것을 살 것인가 사지 않을 것인가를 선택하는 데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한 대중문화는 오락산업의 산물이기 때문에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착취를 위한 것이며, 대중문화가 질적으로 빈약한 것은 오락을 위한 지나친 경쟁의식 때문이라는 것이다. 8) 그리고 대중문화는 폭력과 섹스에 치중하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파괴적이며, 사회의 도덕과 윤리를 해친다는 것이다.
이같은 대중문화에 대한 비판론은 1830년대 미국의 대중지를 중심으로 한 도덕전쟁(moral war) 가운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당시 뉴욕헤럴드지는 대중의 인기를 독차지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폭력이나 섹스와 같은 선정적인 내용을 강조했기 때문에 종교와 정치, 그리고 경제지도자들로부터 이 신문의 불매운동인 도덕전쟁을 야기시켰던 것이다. 9)
⑵대중문화가 고급문화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
대중문화는 고급문화의 내용을 빌어다가 그 내용을 질적으로 저하시키며, 많은 고급문화 창조자들을 유인해가기 때문에, 고급문화 창조를 위한 탤런트의 고갈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중문화 내용은 고급문화 내용을 삭제, 요약, 축소, 각색한 것이기 때문에 고급문화의 특징인 심미적이며 정서적인 멋을 고갈시킨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비판의 예로는 Freud의 이론과 학설이 신문의 독자 상담에 인용되거나, 셰익스피어나 톨스토이의 작품 등이 각색되어 대중물로 나오는 경우 등을 들고 있다.
⑶대중문화가 사용자들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
대중문화물은 기껏해야 대리경험을 해 주며, 정서적으로 사용자에게 나쁜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이같은 비판의 예로는 대중문화물은 폭력물과 범죄물을 강조함으로써 청소년의 비관이나 범죄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좌절감과 욕구불만을 일으키기도 한다는 것이다. 또, 대중문화물은 인간들의 소비풍조를 최대 한도로 자극해서, 소비와 낭비, 그리고 사치를 가져오게 한다. 그리고 대중문화물은 인간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함으로써 심리적으로 마취 작용을 일으키게 하고, 사람들을 정치적 무관심 속에 빠지게 한다. 또 대중문화물은 너무 많고 동질화된 내용을 사용자들에게 강조하기 때문에 수용자들은 독창성과 창의성을 상실하고 수동적 인간으로 전락하게 한다는 것이다.
⑷대중문화가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
대중문화는 사회에 있어서 문화와 문명의 질적 수준을 저하시킬 뿐만 아니라 사용자들을 단순한 수동적 존재로 몰고 감으로써 일부 권력자들에 의해 악용될 염려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대중문화는 사용자들에게 통속적이고 저질적인 내용을 보여 줌으로써 공중도덕을 문란하게 하고 가치관을 흐리게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대중문화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간략히 살펴보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중문화의 독자적인 미적 가치는 인정되지 않으며 고급문화의 심미적 기준에 따라 일방적으로 폄하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관점은 오늘날까지도 일반화, 상식화되어 있다. 몇 년 전 성악가 박인수 교수가 대중가수와 음반을 취입하고 같은 무대에서 가요를 부르는 등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벽을 깨는 작업으로 화제를 불러모은 적이 있다. 요즘은 「열린 음악회」 등을 통해 유행처럼 되어버린 일이지만 당시 박인수 교수는 그 대가로 국립오페라단에서 밀려나는 수모를 당했다. 박인수 교수를 쫓아낸 사람들의 사고방식이야말로 대중문화의 미적 가치를 과소평가 하는 엘리트주의자들의 사고방식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학교교육을 통해 익히는 미학적 기준과 가치관이라는 것도 사실 여기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초등학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예술 교육은 온전히 고급 문화의 가치관에 따르고 있고 문화에 관한 사회적 담론, 예컨대 문화예술에 관한 언론보도, 비평 같은 것들 역시 엘리트주의적 시각을 기저에 깔고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 오래 전부터 팽배해 있는 고급문화 중심의 미적 관점이 결코 본질적으로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 Bourdieu)는 프랑스 사회에서 사회문화적 위치와 예술적 취향 사이에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밝히면서 문화적․미적 판단의 기준은 결코 절대적인 타당성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은 단지 기존의 사회적 차별성을 고정시키고 합리화하는 방식일 뿐이라는 말이다.
이에 관해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는 대단히 재미있는 논란의 소재를 제공한다.
서울 서대문 경찰서는 13일 대학 캠퍼스 안의 조형미술 작품을 고철 덩어리로 잘못 알고 고물상에 팔아넘긴 혐의(특수절도)로 인부 조모(39,무직) 씨 등 2명을 구속. 조 씨는 11일 오후 6시 10분쯤 상명여대 운동장에서 철제조각품 5점(학교측 싯가 3,000만원 주장)을 타이탄 트럭에 싣고 나가 인근 d고물상에 21,500원을 받고 팔았다는 것. 조 씨는 12일 오전에도 용접기를 준비해 “고철을 주우러 가자”며 친구 도모(39)씨와 상명여대에 들어가 전날 미처 가져가지 못한 다른 대형 철제 조각품 2점을 절단하다 미술학과 대학원생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혔다. 조 씨는 경찰에서 “학교측이 귀찮아 처리하지 않은 줄 알았다”며 “고철덩어리가 미술작품이라니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훼손된 조각작품들은 이 학교 예술대 미술학과 김종호(48) 교수의 작품. 김 교수는 “다음 날 김포의 야외 작업실로 옮기려던 차에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겼다”며 "5점은 되찾았으나 절단한 2점은 3,000만원에서 4,000만원의 피해가 예상된다. 무지로 인해 저질러진 일이니만큼 보상을 원하지는 않지만 조 씨 등을 보수작업 등에 참여시켜 작품 활동의 의미를 일깨워 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10)
이른바 고급문화론자들의 미적 가치와 평범한 대중의 미적 가치는 ‘조각품’과 고철덩어리‘의 차이만큼 크다. 같은 대상을 놓고 조각품이라 주장하는 관점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때 그것을 고철이라고 보는 관점은 단지 ’무지‘의 소치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단지 고철 덩어리라고 보는 물건을 수천만원의 가치를 가진 예술품이라고 우기는 사람들이야말로 정신나간 사람은 아닌가. 결국 어떤 것을 고급스러운 예술로 규정하고 어떤 것을 수준 낮은 것으로 규정하는 기준이야말로 사실상 매우 자의적인 것이다.
요컨대 대중문화를 그저 거친 것, 상징성이 낮은 것, 그래서 무가치한 것으로 보고 고급문화의 세련됨, 상징성만을 유일한 미적 가치로 주장하는 관점은 역사적으로 문화담론의 권위를 행사해 온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하나의 관습적 태도에 지나지 않는다.
1) 이강수․강현두, “대중문화에 대한 고찰”, 「한국의 사회와 문화」,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0, p.49
2) 이상희, “대중문화에 대한 문명비판론적 연구”, 1980, p.26
3) Herbert Gans, Popular Culture & High Culture, New York : Basic Books, 1974, p.9
4) 알란 스윈 지우드, 이강수 역, p.93
5) 강현두, 「엘렉트로닉스 시대의 대중문화」, 서울:현암사, 1984, p.124~125
6) 이어령, 「신한국인」, 서울:문학사상사, 1986, p.237
7) 이상희, “대중문화에 대한 문명 비판론적인 연구”. 「한국의 사회와 문화」,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0, p.19
8) 이강수 역, 앞의 책, p.158
9) Edwin Emery & Michael Emery, The Press & America, Englewood Cliffs:Prentice-Hall, 1978, p.120~125
10) 《중앙일보》 95년 4월 13일 「주사위」;원용진, 「대중문화의 과잉담론」《경제와 사회》96년 봄호, 한울, 32쪽에서 재인용
< 註 : 본 글은 12년 전에 쓴 것으로 지금 SINSIYA의 생각과는 많이 다를 수 있다. 지금은 이렇게 진지한 글을 잘 쓰지 않는다. 다만 이 글을 쓸 때나 지금이나 대중문화에 대한 인식은 크게 발전되지 않았다. >